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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

406 2021.03.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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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

오나라의 왕 부차는 부왕의 유언을 마음에 깊이 새겨 기원전 494년 대군을 이끌고 태호의 남쪽으로 진격했다. 초나라에서 망명해 온 오자서와 백비 두 사람이 총참모로서 오와 부차를 움직였음에 비해 월나라의 왕 구천에게는 범여와 대부인 종(種)이 참모진으로서 도사리고 있었다.

월나라의 왕 구천은 오왕이 쳐들어 왔음을 전해 듣고 「풋내기가 건방지게!」 하고 격분하여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출진했다. 범여가 「 섣불리 나서지 말고 동정을 살펴야 합니다.」 라고간언 해도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복수의 화신이 된 오나라의 군사에게 패하고 말았다.

전당강 남쪽에 회계산이라는 산이 있다. 거기에는 월나라 사람의 부족신인 우(禹)를 제사지낸 사당이 있었던 것이다. 수천은 남은 군사 오천을 정리하여 이 산 속에 농성했다. 그리고 대부 종(種)을 사절로 보내어 항복을 제의했다.

「구천은 삼가 君의 신하가 되며 나의 처는 군의 첩이 되어 받들어 모시겠다.」 이 제의를 듣고 오왕은 항복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軍師(군사)격인 오자서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별수 없이 되돌아온 사자의 보고를 들은 구천은 「드디어 나도 마지막이로다. 이제는...」하고 결심했다.

그러나 대부 종은 다시 한 번 적과 협상을 꾀하여 이번에는 오왕의 중신 백비를 포섭해 보려고 했다.

그래서 월나라 미녀 여덟 명을 보내어 백비의 환심을 산 뒤 다시금 항복을 제의했다.

「원컨대 대왕이시어 월왕 구천의 죄를 용서하소서. 그러면 월나라의 보배 그릇을 모두 바치겠나이다. 불행히도 용서치 않으신다면 구천은 처자를 모두 죽이고 그 보물을 태워 없앤 후 오천의 잔병을 이끌어 오나라와 결전을 하오리다.」

그러나 오자서는 좀처럼 공격의 손을 늦추지 않는 고집스런 사나이다. 「 이제 월나라의 숨통을 끊어 놓지 않으면 뒷날 후회 하리다.」하고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뇌물로 자세가 누그러진 백비의 조언으로 오왕은 마침내 월나라의 항복을 수락하고 말았다.

위기일발 한 순간에 월나라는 멸망을 모면한 것이다. 월왕 구천은 회계산 위에서 사슴의 쓸개를 항상 좌우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쓰디쓴 쓸개를 핥고 십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대 회계의 치욕을 잊겠는가?」 식사할 때나 물을 마실 때도 잊지 않고 그 말을 되뇌었다.

「장작 위에 거적때기를 깔고 누웠다」라는 말은 그 말에 꼬리를 단 이야기로 <사기>의 월세가에는 그런 말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흔히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고 하게 되었다.

구천은 자신이 직접 괭이를 들고 밭을 갈았으며 아내로 하여금 베를 짜게 하고 식사 때는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빛깔 있는 옷조차 입지 않았다. 월나라의 중신 범여는 인질이 되어 2년 동안이나 오나라에 머물렀으며 그 동안 대부 種이 월나라의 내정을 맡았다.

한편 월나라를 응징한 오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오만과 방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때마침 북방은 혼란의 극에 이르고 있었다. 65세가 된 공자가 화중을 한참 유랑하고 있을 때였다.

오나라는 북방의 제나라와 노나라에 압력을 가하여 운이 좋으면 중앙 전국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월나라의 복수를 우려한 오자서는 「구천은 一汁一菜(일즙일채)로 검약하여 백성과 같이 고락을 나누고 있다 하더이다.

오나라로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월나라이며 제나라와 노나라 따위는 작은 벌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면서 오왕 부차에게 간언했다. 그러나 오만해진 부차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북으로 출병 제나라를 무찌르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그러던 때에 월나라의 대부인 種이 은근히 눈치를 보며 「월나라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모두 곤경에 처했습니다. 바라건대 식량을 빌려주십시오.」하고 요청해 왔다.

오왕 부차는 이번 기회에 월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생색을 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오자서는 「나의 간언을 듣지 않으면 오나라는 3년 뒤에 폐허가 되리라」하고 중얼거렸다.

백비가 이를 듣고 오왕에게 고자질을 했기 때문에 오자서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오왕은 오자서를 시험하기 위해 오자서를 제나라의 사절로 보내기로 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짐을 눈치 챈 오자서는 제나라의 친구에게 아들을 맡겨 뒷날을 부탁한 뒤 길을 떠났다. 이것이 더욱더 오왕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오왕 부차는 제나라에서 돌아온 오자서에게 촉루의 명검을 보내어 자결하라고 권면하였다.

오자서는 메마른 목소리로 크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아버지로 하여금 천하의 패를 잡게 하고 그대 또한 왕이 되게 했다. 그 시초에 오나라의 반을 내게 주겠다했어도 받지 않았다. 이제 중상하는 말을 듣고 나를 베다니...... 아아」

그런 뒤에 오왕을 비꼬아 한 말은 더욱 극심한 것이었다.

「반드시 나의 눈을 파내어 오나라의 동문 위에 두라. 내 눈으로 월병의 침입을 똑똑히 보겠노라.」

오자서가 자살하여 삼년이 지난 뒤 오왕이 지난날을 생각하지 않고 북방 제후와의 합동회의에 나아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월왕 구천이 이끄는 대군은 성난 파도와 같이 오나라를 덮쳤다.

일찍이 오자서가 예언한 대로 오나라는 월나라에 대패하여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죽은 오자서의 공허항 안와(眼窩)는 과연 오나라의 멸망을 역력히 지켜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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